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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가로막는 '위험 속의 경사로' <데일리팝>

작성자
millgram
작성일
2018-09-28 17:18
조회
3099
얼마 전 휠체어를 타시는 어르신과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며 그분은 이미 알고 있는 음식점으로 나를 안내했다. 훗날 알고 보니 휠체어가 들어 갈 수 있는 음식점은 동네에서 그곳 한 곳뿐이었다.
이처럼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다.
건축 시 경사로에 관련된 법조항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로 1997년에 제정되면서 꾸준히 발전해왔다. 2014년 「장애인 편의시설 매뉴얼」에 의하면 장애인 경사로는 1/18(3°)이하를 권장하고 지형상 곤란한 경우에는 1/12(5°)까지 완화할 수 있다. 경사로의 유효폭은 1.2m 이상이어야 하고 경사로가 연속될 경우 30m마다 수평면으로 된 참을 설치해야한다.
장애인 이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무장애 시설에 관련된 사업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실제로 잘못된 설치를 하여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경사로의 마감재를 철판으로도 많이 설치하는데 비가 온 뒤나 겨울철에는 빙판길보다 더 위험하다. 또 경사로와 출입문 사이에 참이 없을 경우에는 경사로를 올라와서 누군가 출입문을 열어주기 전까지는 휠체어 바퀴를 꼭 잡고 기다려야만 한다.
유모차를 밀고 들어 갈 때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경사로 아래에 유모차를 두고 재빠르게 출입문을 열고 다시 유모차를 밀고 올라가면 되지만 이 잠시에도 아기, 부모, 보고 있는 사람 모두가 불안하다. 또는 경사로를 올라와서 튼실한 배로 유모차를 지탱하면서 가제트처럼 팔을 길게 하여 문을 여는 방법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출입문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게 무슨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2015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종로구에서도 「장애물 없는 마을 만들기」를 종로장애인 복지관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길을 선택하여 경사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선 현황을 조사해 보았다.

상점의 입구, 계단실을 포함하여 총 214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이 중 19곳만이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E출입구만 높이 4cm, 경사로 길이86cm, 폭 120cm로 경사로 규정에 적당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면 2°의 완만한 경사로를 지나면 계단이 보인다.
경사로 1/18(3°) 이하인 곳과 1/12(5°) 이하인 곳은 각각 1곳, 1/8(7°) 이하인 곳은 2곳이고 가장 가파른 경사로는 45°이상으로 평균 약 17°의 경사 각도를 보였다.
2°∼45°까지의 다양한 각도의 경사로는 휠체어가 올라가기에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경사로의 길이가 150cm이상인 3곳을 선택하여 직접 휠체어 체험을 해봤다. 아래 표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경사로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것이 답이 아닐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있지만 경사로의 대안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일본처럼 경사로를 없애고 상점과 인도의 단차를 없애는 방법이다. 상점의 출입구 앞에 리프트를 매립하여 휠체어를 들어 올리는 방식이 있다. 통계청 자료의 우리나라 토지 최고공시지가를 보면 명동이 1㎡당 8070만원 (평당 2억6600만원)이라고 한다. 땅값과 비교해 보면 리프트를 설치하는데 많은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훨씬 효율적 일거라 생각된다.
위 표에서 A, B 경사로를 만드는데 필요한 토지는 각각 7㎡가 필요하다. 토지 가격이 싼 곳은 규정에 적합한 경사로를 설치하고 토지 가격이 비싼 곳은 토지 가격보다 저렴한 리프트를 출입구 앞에 매립하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또 중요한 문제점은 핸드레일이다. 겨울철 낙상 사고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걷는 것이다. 위험한 순간에 재빠르게 주변에 핸드레일이나 바닥을 집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통 핸드레일은 녹이나 부식이 잘 생기지 않아 유지 관리가 쉽다는 이유로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져있다.
냄비의 소재로도 사용이 될 정도로 열전도율이 뛰어난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핸드레일을 여름철에 잘 달궈진 상태로 잡았다가는 화상입기 딱 좋다. 반대로 겨울철 휠체어를 밀다가 손에 땀이 난 상태로 얼음 같은 스테인레스 손잡이를 잡았다면 어떻게 될까?
대안은 열전도율이 낮은 나무 핸드레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나무 핸드레일은 자연소재라 촉감이 좋다는 장점과 함께 세균 번식이나 부식과 화재에 취약한 단점도 있어 이에 대한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주)밀리그램 조명민 대표

* 경사로에서 휠체어 체험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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